켈트신화 - 피르볼그족
<에린 침략의 서>에 따르면, 피르 볼 족에는 다섯 명의 족장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각각 간Gann, 게난Genann, 루드리Rudraige, 셍간Sengann, 그리고 슬랑가Slanga였으며, 델라Dela의 다섯 아들이었다. 그들의 아내의 이르은 각각 아누스트Anust, 리베르Liber, 크누하Cnucha, 푸아트Fuat, 그리고 에타르Etar였다.
푸아트는 마음이 비뚤어지지 않은 슬랑가의 아내였고, 에타르는 용맹한 간의 아내였으며, 아누스트는 창을 잘 다루는 셍간의 아내였고, 크누하는 순수한 게난의 아내였다. 리베르는 붉은 머리 루드리의 아내였는데, 그는 책략의 달인이었으며, 그의 일족은 마음이 넓고 친절했다.
- <에린 침략의 서> 중 -
피르 볼은 세 부족으로 나뉘었다. 슬랑가의 일족, 간과 셍간의 일족, 게난과 루드리의 일족이 각각 이들이다. 슬랑가의 일족은 갈리인Gailioin이라 불리게 되었고, 간과 셍간은 자신의 일족을 피르 볼이라 이름지었으며, 피르 돔난Fir Domnann은 게난과 루드리를 따르는 자들이었다. 이들 모두를 총칭하여 피르 볼이라 하였다. 널리 알려졌듯이 피르 볼은 그들이 가져온 가죽 가방에서 유래한 이름이며, 갈리인은 그들의 투창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러나 피르 돔난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확실치 않다. "돔난"은 "다누Danu" 여신의 이름과 같은 어원을 가졌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확증된 바는 없다.
이들은 아일랜드를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델라의 다섯 아들들은 각 지역의 왕이 되었다.
로흐Loch의 아들 델라의 아들인 슬랑가의 일족이 그 중 하나로, 그들은 인베르 슬리네Inber Slaine에 배를 대었다. 그들의 수는 모두 천 명이었고, 그들의 영지는 인베르 콜파로Inber Colptha부터 코마르 트린우즈케Comar TrinUisce에 이르렀다. 또 다른 한 부족은 인베르 두블리시에 내린 간과 셍간의 일족이었는데, 그들의 수는 모두 2천이었다. 간은 코마르 트린우즈케로부터 벨라흐 콘리스Belach Conglais에 이르는 지역을, 셍간은 벨라흐 콘리스에서부터 륌네흐Luimneach에 이르는 지역을 다스렸는데, 이는 무무Mumu(오늘날의 문스터Munster)의 5분의 2 이상이었다. 나머지 한 부족은 게난과 루드리의 일족으로, 그들은 인베르 돔난Inber Domnann에 닻을 내렸고, 그리하여 피르 돔난이라 불리게 되었다. 게난은 후에 메이브Medb와 알릴Ailell이 다스리게 되는 바로 그 땅의 왕이 되었고, 루드리는 후에 코노후르Conchobor의 지배를 받을 땅을 차지하였다. 이들 부족의 숫자는 모두 2천이었다. 이들이 바로 피르 볼, 피르 돔난, 그리고 갈리인 족이다.
- <에린 침략의 서> 중 -
이들은 37년 동안 아일랜드를 다스렸다.
피르 볼의 독특한 점은, 이들 다섯 왕을 통합하여 다스리는 상왕(上王; 영어로는 High King이라고 번역됨), 즉 아르드-리Ard Righ라는 제도가 있었다는 점이다. <에린 침략의 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피르 볼 이전에는 "아일랜드의 왕"이라 불릴 자가 없었다. 그러나 피르 볼의 시대에는 아홉 명의 아르드-리가 아일랜드를 거쳐 갔다.
슬랑가는 한 해를 다스리고 죽었다. 그 다음 왕이 된 루드리는 두 해를 다스리고 브루 브라트루아드Brug Bratruad에서 죽었다. 겐과 게난이 함께 왕위에 올라 그 뒤를 이었고, 그들의 통치는 네 해 동안 계속되었다. 둘은 프레민드Fremaind에서 병에 걸려 죽었다. 뒤를 이은 셍간은 다섯 해를 다스리고 게난의 아들 린딜Rindail의 손에 죽었다. 린딜은 여섯 해를 다스리고, 에바 코프레에서 셍간의 아들 포이니드Fodbgenid에게 살해당했다. 포이니드는 네 해를 다스리고, 모이 뮈르헤네Mag Muirthemne에서 린딜의 아들 요후Eochu의 손에 죽었다. 에르크Erc의 아들 요후는 열 해를 다스렸다. 그의 치세하에 아일랜드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고, 내리는 물이라곤 이슬밖에 없었으나, 흉작이 든 해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또한 모든 그릇됨이 아일랜드로부터 추방되었으니, 그는 아일랜드에 처음으로 죄를 벌하는 정의의 법을 행하였던 것이다. 에르크의 아들 요후는 네메드Nemed의 세 아들들의 손에 죽었다. 아일랜드의 왕들 중 자신의 땅에서 치명상을 입은 자는 그가 최초였다.
- <에린 침략의 서>에서 -
피르 볼이 아일랜드에 발디딘 지 30년만에, 투아하 데 다난Tuatha De Danann이 왔다. 이들은 모이 투라Mag Tuired에서 길고 긴 전투를 벌였다 (모이 투라의 전투는 후에 <투아하 데 다나안> 장에서 더 자세히 다룰 계획임). 마침내 전세는 피르 볼에게 불리해졌고, 그들은 북쪽으로 패주했다. 투아하 데 다난은 그들을 뒤쫓으며 학살했다. 요힐의 해안에서 십만 명의 피르 볼이 죽었다. 요히 왕이 네메드의 세 아들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도 바로 그곳이었다. 그러나 투아하 데 다난의 피해 역시 적지 않았다. 그들의 왕 누아다는 한쪽 팔을 잃었다.
피르 볼은 거의 전멸당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몇 안 되는 자들은 투아하 데 다난을 피해 아일랜드를 떠나, 아라Ara, 일레Ile, 라흐라Rachra, 그리고 다른 섬들로 도망쳤다. 그들 중 일부는 후에 또 한 번의 모이 투라 전투에서 포보르Fomor를 돕기도 하였다.
네베드와 포보르의 전쟁 이후, 에린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승자인 포보르가 계속 에린을 다스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대부분의 전승은 정 반대의 근거를 제시한다. 뒤이은 포보르의 치세를 전하고 있는 전승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그 뒤에 에린에 도착한 피르 볼 족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그 땅을 점령한다. 이러한 증거들로 보아, 피르 볼이 도착할 당시 에린에는 아무도 살지 않고 있거나, 적어도 극소수의 사람들만 살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네베드 족의 저항이 너무 거세었던 나머지, 포보르 족은 승리했지만 더 이상 에린의 지배를 지탱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실제로 포보르의 두 왕 중 한 명은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혹은 포보르 족의 약탈적인 성격으로 미루어볼 때, 그들의 지배 대상은 땅이 아닌 사람이었으며, 따라서 지배하고 약탈할 피지배 종족이 없는 에린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으므로 그들 역시 떠나 버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추측도 증거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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