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206

'세상 일이라는건 말이야, 정말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고 생각해'

 

나는 맥주잔을 비웠다. 간만에 만난 녀석이 무슨 소리인지.

오독, 소리가 났다. 무신경하게 입에 넣은 땅콩을 씹는다. 오독, 오독, 오독.

 

'10년 전의 내가 이런걸 하고 있을지 누가 알았겠어? 나조차도 모르던 그런 일들이 말이야.'

 

오독오독. 나는 계속 땅콩을 씹는다.

어차피 저녀석, 내가 다른 말을 해도 이야기를 계속할 거라는걸 뻔히 알기에.

뭐랄까, 희화화해서 이야기하자면, 라이브콘서트라고 할수 있겠다. 아아, 난 제대로 되먹지 못한 관중인건가. 잠시 반성의 시간.

 

'인생이라는건 어찌될지 모르니까, 그때그때에 충실하면 그만 아닐까?'


오케이. 반성 끝. 아무리 봐도 난 참 모범적이란 말이지. 

음, 그러니까 하루벌어 하루 먹는 그런 이야기 말인건가. 어이어이, 매사에 충실하는건 좋은데, 적당히 뒷일도 생각해두라고. 라고 말한 순간, 그녀석은 조용히 맥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얌전히 고개를 푹 숙였다. 책상에 녀석이 머리를 박아서 쾅소리가 나긴 했지만, 오늘 정도면 뭐 얌전한 주사다.

 

내 앞에 기절해 계신 A군은 그야말로 혀 세치로 벌어먹고 사는 녀석이다. 직업병이라면 글쎄, 어디서든 마이크를 잡고 리드하는듯 놓지 않으려는 것이랄까. 방금처럼. 뭐, 물론 그렇다. 삶이라는건 어찌 바뀔지 모른다는 건데, 누구나 무미건조한 삶을 살진 않는다고. 누구나 한번쯤 핸들이 부러져라 인생 드리프트를 해본 적은 있을 거고, 갈림길에서 고민은 누구나 해보는 거다. 오죽하면 중2병 걸린 녀석들이 좋아하는 설정엔 평행세계가 들어가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갈림길에 선다. 갈림길에서 장렬히 전사한 그대, A군에게 테페리의 축복을. 내일의 숙취가 덜하기를.

 

사람을 대하는 일은 때론 피곤하다. 여러 사람을 만나는 자리는 특히. 사람마다 특징이 다른  법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모인다는 환경에서 이 피로는 기인한다. 이용하려는 사람, 생각 없는 사람,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 등등등. 사람에 맞춰 스스로를 커스터마이징 해야하니 보통 일일까 그게. 끊임없이 머리 속의 조건문을 변경하고, 메뉴얼을 출력한다. 단순해보이지만, 그 순간 순간에도 갈림길에 선다. 그럴 때의 갈림길은 단순한 메세지가 아니다. 세상에 'GAME OVER. 게임을 다시 시작하시겠습니까? (Y/N)' 같은 친절한 문구는 없다.

 

'오독' 나는 다시 땅콩을 씹는다. 간단히 주위를 둘러봐도 그런건 뻔히 보인다. 오늘도 취객들을 상대로 열심히 정치학을 연구하는 술집의 웨이트리스들, 한잔 술에 피로를 날려버리려 온 사장들, 그리고 열심히 보좌하시느라 알콜에 먹혀 정신 없는 말단들, 아예 얼어있는 신입들, 그리고 조용히 계산대에서 '아, 집에 가고 싶다'를 온몸으로 외치는 술집 사장. 만명의 사람이 있다면 만명의 시각이 있다. 만인의 사각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미묘한 거리를 두고 산다. 그 미묘한 거리를 조절하며 사람들을 만난다. '사람들 사이엔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라고 어떤 시인이 읇었더랬다. 미묘한 거리재기는 그야말로 눈치와 모든 계산의 결정체이다. 두사람의 거리계산은 맞을수도 있고, 미스로 어그러질수도 있다. 두 사람의 거리계산.

 

'오독' 땅콩을 씹다보니 느낀 것이지만, 결국은 오독이다. 오독은 몰이해와 오판에서 시작되고, 그것은 오산으로 이어진다. 판단미스야 어쩔수 없다 치더라도, 결국 피곤해지는 이유는 그만큼 미스가 나면 보수하려 죽어라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 관계는 종이와도 같아서, 한번 젖어버리면 말라도 원상태로 돌아갈 수 없더라. '네~시!' 라며 핸드폰이 울린다. 슬슬 시간이다. 저녀석 얼른 치우고 나도 집으로 가야지.

 

'으으, 젠장. 입춘인데 눈발이나 날리냐 어떻게 된게.'

'곧 봄이라잖냐. 참아봐라. 정말 너에게도 봄날이 올지 누가 아냐?'

 

뻗은 녀석을 두들겨 패서 깨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녀석은 말했다. '아 봄날이라니, 그런거 가능할리가 있다고 보냐?'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미래는 확정되어있지 않다며. 그럼, 넌 왜 그걸 벌써부터 정해놓냐?' 그렇지. 미래는 확정되어있지 않다. 수많은 선택의 결과가 만들어가는 교향곡이랄까. 몇가지 변수가 있다면, '운'으로 대표되는 그 변수가 있지 않을까. 가끔 그런 운들이 모여 대박을 치기도 한다. 마치, 지갑을 파출소에 맡겼더니 고맙다며 30만원을 사례금으로 받는 그런 것에 비유할수 있지 않을까. 미래(未来)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준비도 해두는 것도 좋지만, 너무 걱정하는 것에서 얼리어답터가 될 필요는 없지.


엔딩 뒤의 세계따위, 알까보냐. 난 현실에서도 엔딩 보려고 노력해야한다고. 

정말 온갖 노력을 다하고서, 포르투나의 미소를 보게 된다면 누구든 말하게 되겠지.

'엘, 프사이, 콩그루'


 

p.s 요새 너무 글을 안쓴거 같아 두드려봤는데 영 성에 안찬다.

p.s2 아무리 생각해도 트위터를 오래한 티가 난다. 너무 오덕군자스러운 언어가 넘쳐 (...)

p.s3 아무래도 종종 글은 좀 써야겠다. 일단 오늘은 자야지. 내일도 출근 출근...